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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중년 여성(서울 임산부 배려석)과 남성(태교 여행)에 대한 여성들의 사회적 폭력

지하철에 앉아있다 보면 임산부 배려석 앞에서 망설이는 중년 여성, 할머니를 보게 된다.

그런 모습을 보게 되면 마음이 매우 불편하다.

이런 나의 불편함은 요즈음의 여성인권향상운동?에 대한 불편함과 맥을 같이한다.

나는 임산부 배려석이 '사회적 배려' 혹은 여성의 '인권향상'이 아닌 특정 여성의 '특권'이라 생각한다.

요즈음의 여성인권향상운동 또한 인권 향상 보다 특정 계층의 특권 생성 및 강화가 목적이라 생각한다.

내 문제의식은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임산부 배려석은 사회 전반적 인권 향상에 기여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아니다. 임산부 배려석은 임산부의 인권 향상에 기여한다."이다.


주장 1 : 공리주의 측면

임산부 배려석의 존재는 타 교통약자의 교통편의를 저하시킨다.

지하철 및 버스의 좌석 수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 중 일부를 특정 계층만 우선적으로 사용하도록 제한한다면 이로 인한 부작용보다 편익이 커야 한다. 그러나 임산부 배려석을 대상은 일부고, 이로 인해 피해를 보는 교통약자는 다수다. 따라서 임산부 배려석은 전반적인 교통약자의 인권을 향상시키는 것이 아닌 오히려 교통약자의 인권을 하향시키며, 일부 지역(서울, 경기 일부), 특정 연령, 특정 성별의 사람들에게 특권을 주는 제도다.

이 제도로 가장 큰 혜택을 받는 사람은 서울, 경기도에서 버스 및 지하철을 이용하며, 출퇴근을 하는 임신한 직장여성일 것이다. 이들은 또한 내가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 여성인권향상운동의 주요 수혜자이기도 하다.


주장 2 : 사회문화구조적 측면

임산부 배려석의 주요 대상은 20~30대 여성이다. 이들은 사회문화적으로 여성에 대한 인권 탄압을 직접적으로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근거로 이러한 인권탄압을 직접적으로 받았던 '중년 여성'에 대한 폭력을 자행한다.

상식적인 며느리와 비상식적인 시어머니로 프레임을 형성하고 비상식적인 중년 여성들이 변화해야 한다고 강요한다. 중년 여성들은 자신들이 아이를 임신하고 양육할 때 어떤 사회적 혜택을 받지 못했을 뿐더러 사회문화적으로는 남아선호사상, 효사상에 대한 강요 등으로 인권탄압을 적어도 지금의 20~30대 여성보다는 많이 받은 주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신들의 인권탄압과 희생에 대한 혜택은 받지 못하며 오히려 가장 비상식적인 사회적 계층으로 낙인되어 지금의 20~30대 여성의 '상식'에 맞는 행동을 하도록 강요받고 있다.

중년 여성이 임산부 배려석을 '배려'하도록 사회적으로 강제할 당위는 인권향상 측면에서 없다. 중년의 여성은 '상식적으로' 교통약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임산부 배려석 앞에서 '배려'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이들에게 또 다른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며, 이는 이들의 인권을 저하 시키는 것이다.


지금의 20~30대 여성들은 과거 유교문화로 통칭되었던 여성에 대한 탄압을 근거로 자신들의 인권향상을 주장하지만, 사실 이들은 사회적으로 큰 희생을 한 것이 없다. 지금의 20~30대 여성들은 국방의 의무를 다하지 않으나, 직업으로서 군인을 선택할 수 있다. 또한 '남아출산강요', '차례', '제사', '명절', '시어머니에 의한 정신적 폭력' 등으로 인한 인권탄압을 지금의 '중년 여성'들이 받았던 수준으로 받지 않는다. '중년 여성' 들과 달리 '20~30대 여성들'은 자신들은 희생하거나 고통받지 않은 과거 '중년 여성'들에 인권탄압을 근거로 자신의 인권 향상을 주장한다. 동시에 '중년 여성'들에게 사회적 강제를 통해 '배려'를 강요함으로써 '임산부 배려석'과 같은 자신들의 특권을 생성하고 강화한다.


'20~30대 여성들'의 특권 생성 및 강화는 남성을 대상으로도 강제한다. '태교 여행' 등으로 명칭함으로써 출산에 대한 여성의 희생을 근거로 프레임을 형성하고 이 프레임 안에서 여성의 희생에 대한 대가로 남성도 비슷한 수준으로 희생할 것을 강요하거나, 여성의 희생에 대해 보상할 것을 요구한다. '태교 여행'은 '태교 여행'이 태아의 인권 향상에 얼마나 어떻게 기여하는지, 그 기여가 과학적으로 증명되는지 여부는 이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태교 여행'의 목적은 태아의 인권 향상이 아닌 출산으로 희생하는 '20~30대 여성'에 대한 보상이기 때문이다. '태교 여행' 이라는 명칭은 이러한 프레임에 동의하지 않는 남성을 '꼰대', '마초'로 규정하거나, 가장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무능한' 남성으로 낙인찍는다. 이로 인해 남성은 '태교 여행'에 대해 동의하도록 강압받는다.


근래의 '20~30대 여성들은' 자신들은 '희생'하지 않으며, 사회 또는 가족의 구성원으로써 마땅히 해야 하는 혹은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발생하는 '불이익' 혹은 '희생'을 부각시킴으로써 이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고 자신들의 상식을 근거로 일부 사람들을 '비상식적인' 사람으로 낙인찍음으로써 여성의 인권 향상이라는 목적을 달성한다. 일부 여성의 인권이 향상될 뿐 사회의 전반적인 인권 향상에 기여하지 않는다. 일부 여성의 인권 향상이 사회 전반적 인권 향상에 기여하지 않는다면 이는 인권 향상이 아닌 일부 계층의 특권 생성일 뿐이다. 이것이 요즈음의 '여성인권향상운동'에 대해 내가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다.


임산부 배려라는 뱃지를 보고도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고, 임산부 배려석에 앉았다고 중년 여성, 중년 남성, 당신처럼 눈에 보이지 않으나 교통약자일 수 있는 사람에 대해 '비상식적'이라 욕하지 말라. 당신의 '상식'이 당신만의 '상식'일 수 있다. 당신의 '상식'이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가해자의 '상식'과 같은 수준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