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진(2015). 『세월호란 우리에게 무엇인가-철학의 물음』, 이학사.
책의 내용을 요약 및 일부 수정.
1. 세월호가 던진 물음 - 국가란 무엇인가?
2014년 4월 16일 304명의 국민이 죽어가는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해경, 행정부를 보며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발생.
홉스 - 국가란 국민 보호 기관, 국민이기 이전부터 자신의 것으로 가지고 있는 것(자연권)을 보호하기 위한 인위적 장치, 리바이어던.
세월호 구조과정에서 드러난 정부의 무능과 '국가'의 부재
배의 침몰을 지켜보는 해경으로 대표되는 국가의 부재. 세월호 '옆'에 있던 국가는 자신의 존재 근거를 스스로 배반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옆'에 '홉스의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루소 - 홉스는 자연권을 소유권 등으로 이해한 반면 루소는 모든 인간은 본성상 자유로운 존재라는 측면에서 평등함.
루소의 국가 역시 국민의 자연권을 보호하는 것이 중요.
루소의 국가에서 자연권 보호의 핵심은 자연적이고 평등한 자유가 비자연적이고 사회적인 불평등에 의해 파괴·침해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
자본에 봉사하는 하위조직이 되어버린 국가는 자본에 의해 국민의 천부적 자연권이 말살되는 것에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세월호 침몰 이전에 이미 충분히 부패해버린 국가는 천부적 자연권이 비자연적·인위적 소유권에 의해 침해·파괴되는 것을 방치하고 조장했다.
4월 16일 이전의 대한민국에 '루소의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공자 - 유교권에서 국가는 부모와 다름 없으며 국가는 부모가 아이를 보살피듯 국민을 보살펴야 했다. 전근대적·유교적 국가에서의 국가·국민 관계는 부모·자식 관계처럼 권리·의무이전의 관계이다. 국가가 국민을 위해 자신의 힘을 사용하는 경우, 국민은 그것을 간청할 수 있을 뿐 법적·정치적으로 강제할 수 없었다. 전근대적 국가·국민의 관계는 일방의 선의에 의존한 수직적 질서였다.
4월 16일 이후 경찰, 안전행정부 등의 관료조직, 청와대와 대통령, 국회 모두 피해자 가족들을 자신의 '가족'으로 대우하지 않았다. 국가는 국민을 '남의 자식'으로 대우했다.
4월 16일 이후의 대한민국에 '유교적·전근대적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소수만의 국가
4월 16일 당시 대한민국의 국가권력은 철저하게 선택적으로 작동했다.
세월호 '옆'에 있던 대한민국은 국민을 구조하지 못하는 무능한 국가가 결코 아니었다. 세월호가 바다에 가라앉아가고 있던 그 시간 진도 실재체육관에서 이루어진 경찰의 가족 사찰, 대통령과 고위 관료를 위한 의전 행위 등은 국가권력의 유능함을 증명하기에 충분했다.
다만 세월호 옆에 있던 대한민국은 세월호 안의 국민을 자신의 국민으로 간주하지 않았을 뿐이다.
침몰하는 세월호 옆에서 해경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그들이 무능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세월호 안의 국민을 구조해야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세월호 안에 있던 사람들은 국가권력의 보호를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세월호 침몰 이전의 국가권력은 국민의 일부를 다른 일부와 구분한 후, 일부에는 호의적으로 다른 일부에는 적대적으로 작동했다. 배제와 포용의 기준은 사적 이익이었으며 그것도 이미 존재하는 사적 이익, 즉 기득권이었다. 세월호 침몰 이전에 존재했던 대한민국은 소수에 의한, 소수를 위한, 소수만의 국가였다.
4월 16일 이후의 대한민국 국가권력 역시 다를 바 없었다. 세월호 침몰 이후 국가권력은 안전한 국가에 대한 요구와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국가에 대한 요구를 양립 불가능한 요구로 만든 후 둘 중의 하나를 택하고 다른 하나를 포기하라고 강요했다. 국가권력은 배제된 것을 요구하는 피해자 가족들에게 그들 역시 배제되고 말 것이라고 암묵적으로 위협할 뿐이었다. 세월호 이후의 대한민국은 피해자 가족들을 다른 국민과 단절시킨 후 그들(만)이 언제든 국가권력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벌거숭이 존재, 즉 '호모 사케르'상태로 내몰릴 수 있음을 끊임없이 상기시켰다.
4월 16일 당시, 이전, 이후, 즉 세월호 침몰 전 기간에 걸쳐 대한민국 국가권력은 철저하게 선택적으로 작동했다. 좁게는 세월호 희생자에게, 넓게는 사회적 약자 모두에게 국가권력은 철처히 부정적으로 작동했다. 그것은 대한민국 국민이 바라는 대한민국이 아니었으며, 세월호의 국민이 바라는 대한민국은 더더욱 아니었다.
세월호의 대한민국
세월호 '옆'의 국가는 무력했고, 세월호 '앞'의 국가는 부자유와 불평등의 원천이었으며 세월호 '뒤'의 국가는 무심했다. 국가는 일부 국민으로부터 국민의 자격을 박탈하고, 그들을 다른 국민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삼았으며, 국민의 자격을 되돌려달라는 그들의 요구를 강제적으로 억압했다. 국가의 법이 강자의 이익을 위한 한갓 수단임을 더 이상 감추려하지 않는 국가, 그 국가는 자신의 "야만성"을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세월호를 통해 나타난 대한민국은 홉스, 루소로 대변되는 서구적 개념의 근대적 국가도 아니며, 유교적, 전근대적 개념의 국가도 아니다.
세월호 이전의, 당시의, 이후의 대한민국은 기존에 기득권을 갖고 있는 소수를 위한 국가이며, 이에 대한 어떠한 반성이나 문제의식, 부끄러움이 없는 국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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